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조 히데키 (문단 편집) == 평가 == 도조 히데키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일본제국]]의 군국주의화를 주도한 원흉이었고, 그 결과 사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질서에서 그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여지는 거의 없다. 즉, 당시 일본 제국은 전형적인 입헌군주제가 아닌 [[막부#s-3|막부]]가 통치하는 나라에 가까웠으며, 그것도 일본 역사상 가장 광기에 찬 막부였다. 막부가 있으면 [[쇼군]]이 존재하는 법인데, 이 일본군 막부 내에서 쇼군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 바로 도조 히데키였다. 다만 일각에선 그가 개전 책임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역사적으로 [[악의 축]]에 섰다고 평가받는 국가들은 각자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극악무도한 [[독재자]]들이 최소 한 명씩은 존재했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 파시즘]]의 [[베니토 무솔리니]],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등이 대표 인물들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은 앞서 말한 국가들과 비교해서 사악함에서 크게 밀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술한 케이스와 같은 이 나라를 대표할 독재자 포지션이 후술되어있듯 여러 사정상 그나마 도조 히데키 정도를 빼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즉,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건 순전히 다 이 놈 때문이다!'라고 분풀이를 할 대상이라는 것.][* 특히 미국이 전후 일본 통치를 고려해서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책임을 묻어버리고, 천황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태평양전쟁 개전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가 전범재판에 세울 일본의 전쟁책임자로 결정된다.] 본인이 저지르지 않았던 악행조차 덤터기 쓰고 있는 억울함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일본 제국의 최고지도자로 일본 육해군의 작전의 입안, 진행 사항 등을 보고받고 세세히 개입했으며, 악명 높은 [[731부대]]까지 직속으로 둔 [[쇼와 덴노|히로히토 천황]]은 일말의 비판조차 할 수 없는 최고존엄이었으며, 패전 후에도 혼란을 안정시키려는 [[미국]]과 천황만큼은 살리려는 당시 일본의 합의로 일본은 명목상 [[입헌군주제]]라[* 물론 말만 그렇지 오늘날 일부 중동 지역의 국가들처럼 엄연히 [[전제군주제]]스런 측면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사 입헌군주제라 볼 수 있었다. 실제 [[대일본제국 헌법]]에서 규정한 천황대권은 전제군주에 더 가까웠고, 이를 내각과 원로가 견제, 보좌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천황대권에 대한 견제장치가 미흡하면서 천황 개인의 정치적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재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일본 군부는 이 점을 십분 활용하여 폭주했던 것이고, [[히로히토]] 입장에서도 이들을 방조 내지 소극적으로 지지하며 자신의 지위를 다져나갔다.][* 친히로히토 사학자들 중에선 히로히토가 아무런 실권도 없는 [[허수아비(은어)|허수아비]]라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말미에 핵을 두 방이나 맞았다곤 해도 '''그럼에도 결사항전하자는 육군을 위시한 반대파'''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묵살시키고''' 무조건 항복을 통과시킨 사람은 바로 히로히토 본인이었다. 물론 그럴 정도로 당시 일제 상황이 끝판에 몰려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이기도 했다. 물론 이는 상술했듯 그 군부를 밀어주며 얻은 권위이긴 했지만, 히로히토는 마냥 [[얼굴마담]]은 아닌 군부도 상황에 따라 꺾일 수밖에 없는 영향력 정도는 있었다.] 천황은 실권이 없었다는 논리로 면책되었다. 또 당시 일본군 전체가 도조 히데키에게 복종했던 것도 아니었다. 육군 출신이라는 이유로 총리 도조 히데키가 [[일본 제국 해군|일본 해군]]을 통제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측면도 있었고[* 물론 이건 도조 히데키의 개인 능력 문제지 그렇다고 도조 히데키가 권한이 없었다는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심지어 해군의 승패 여부조차도 모를 정도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육군과 해군은 사실상 적군처럼 대립했다]]. 다만 이 사건 이후로 도조도 해군 군령부장을 [[경질]]하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앉히는 등 나름대로 해군을 통제하기 위한 압력을 넣기는 했다. 물론 도조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중일전쟁]]의 확대에도 크게 기여한 인물인 만큼, 전쟁 중에 일어난 모든 참상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도조가 히틀러와 동일 선상에 놓일만큼 악랄한 독재자라고 보기에는 다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히틀러는 본인이 직접 [[유태인]] 학살을 지시하고, [[독소전쟁]] 당시 국제법을 어겨서라도 슬라브인 말살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린 만큼 독일군의 모든 학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희대의 학살자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도조는 독재자에 군국주의자였을지언정 직접적으로 학살을 지시하거나 인종말살 따위를 외친 적은 없다.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일본군의 학살 대부분은 현장 지휘관 혹은 휘하 장교가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이었지 도조의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태평양 전쟁 후반에 도조가 '귀축영미'라는 문구를 내세워 미군과 영국군을 악마화 하는 데에 앞장서기는 했으나, 이는 히틀러와 같은 인종말살 선동이 아니라 전세가 불리해지자 사람들의 투쟁심과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의 성격이 강했다.] 한 마디로 히틀러와 달리 도조는 군부의 모든 악행에 관여한 인물은 결코 아니며, 당시 일본군에서 반인륜적인 악행을 저지른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기무라 헤이타로]], [[다치바나 요시오]], [[이시이 시로]] 등에 비하면 '''그나마''' 상식적인 편에 속한다. 그렇기에 도조 히데키라는 인물을 단순히 같은 추축국의 수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히틀러 같은 인물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오는 편이다. 즉, '''도조는 개전 책임자로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도조를 히틀러 같은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하다 보면 더 악랄한 자들의 책임이 묻힐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딱 한 가지 확실한 건 악행의 여부를 떠나 본 문서에도 적혀있듯 최종 지휘관 측면에서 보자면 [[무능]]했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